김우경의 심미안 7.

어디에 서있을까? 

우리사회에서 어느 특정 집단 소수는 다수를 대변한다 말한다. “국민”, “시민”이라는 이름을 올라타고 마치 정의를 외치는 사도처럼, 모두의 민의를 모은 것처럼.... 오래전 대학에 있을 때 일이다. 어떤 사항에 대하여 대자보가 붙었다. 그런데 그 대자보의 끝에는 내가 속한 그룹의 이름이 담긴 “◯◯일동”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동의하지도,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상당히 불쾌했다. 이건 뭐지? 그들은 왜 집단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보았다. “다수(多數)”라 지칭하는 것이 전체 구성원의 과반을 넘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상당한 수라는 개념을 포괄적으로 적용하여 두 세 사람이 아닌 어느 정도의 수가 채워지면 다수라 할 수 있는 것인지 모호해서 그것을 정의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작금의 정치와 문화는 진영논리를 앞세운 집단주의가 득세하는 형국이다. 수가 많다고 전체를 다 아우른 것처럼 호도(糊塗)하기도 하며 강성 지지층을 가진 소수의 주장을 전체로 이끌려 혈안이 되어있다. 그렇다보니 재한동포나 재한외국인의 작은 소리들은 묻히기 일쑤이다. 심지어 동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하던 정치희망자들 조차도 제대로 된 준비와 바른 각오를 세우지 않은 채 집단의 행보에 들러리만 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는 머지않아 재외동포청을 출범시키겠다고 한다. 해외에 흩어져 사는 우리 동포들의 권익과 활동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지난 2월 27일 국회에서 통과된 재외동포청 법안을 발판으로 상반기에 설립을 추진 중에 있다.  2022년 12월 7일에 열린 재외동포정책위원회에서 박진 외교부장관은 ‘정부가 신설을 추진하는 재외동포청이 앞으로 재외동포들에게 국내와 같은 수준의 원스톱 민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범정부적 협업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재외동포재단법 제2조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및 “국적에 관계없이 한민족(韓民族)의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거주ㆍ생활하는 사람”을 재외동포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내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재외국민등록법》에 따르면 장기체류의 기준은 90일 이상 거주라는데 그렇다면 유학이나 연수 또는 업무상 90일 이상 체류한 한국인도 해외동포인가? 이것도 참 어색한 기준이다. 지구촌이라고 불리는 국제화시대에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시점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자. 출생은 한반도가 아닌 곳에서 했으나 개인의 환경에 따라 입국하여 한국에서 90일 이상 거주 또는 영구 정착하는 사람들은 해외동포의 국내 일시거주 신분인가? 이 논리대로라면 재한중국동포와 재한 고려인들, 그리고 한반도 태생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거주하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무조건 재외동포로서 한국(모국)장기체류(F4, F5)의 신분이어야 하고 한국에서 출생했으나 해외에 상당기간 거주 했던 필자도 재외동포 경험자라 할 수 있겠다.     
해외동포를 규정하는 기준은 국적은 어디이며 현재 어디에 거주하는가? 이것이 핵심이다. 재외 동포재단이나 지금 추진 중에 있는 해외동포청은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국내거주 동포에 대한 업무와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그냥 들러리처럼 곁다리로 소관 업무를 하는 담당자만 두고 또 중요 현안들은 묻어둘 것인가? 지금의 분위기로는 기존의 외교부 내 재외동포영사실 중심의 재외동포 정책기능과 재외동포재단 교류 사업을 승계 또는 확대할 뿐이니... 이것이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이 만들어진다 해도 재한동포들이 크게 반기지 않은 이유이다.

네덜란드는 헤이그에 이민귀화청이 신설되어 있다. 출입국관리 및 정착 교육, 언어, 생활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사회도 규제만을 위한 행정이 아닌 정착과 연합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정착될 때 사회통합은 원활해질 것이다.  동포청을 명명할 때 해외나 재외를 붙이지 말고 그냥 “동포이민청” 또는 “(한인)동포청”이라고 한다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 좀 더 명확하게 재한동포까지 포함되는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한 명 한 명이 모두가 다 평등하지는 않다. 공산사회라 할지라도 그들이 세운 기준에 따라 계급적 평등이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도 그렇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이 따르고 그것을 존중하고 지킬 때 자유는 살아있는 것이다. 
“동포(同胞)”는 무엇인가가 같다는 말이다. 주로 생물학적 뿌리가 같은 존재를 통상적으로 일컷는 말이지만 우리사회는 무엇인가를 구별하기 위해 쓰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느끼는 건 필자뿐일까? 
지금은 필연성을 가진 채 특정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 시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더 많은 이민자와 동포들이 거주하는 곳이 될 것이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문화와 사회가 강화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제는 집단의 시대, 통제의 시대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회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잘 분별할 때 쇠퇴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누구든 말하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정제된 양심과 공존을 생각하며 표현하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마치 진리인 것처럼, 사실인 것처럼 외치는 사람은 많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소음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 많은 이들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인간으로서 양심이 지시하는 올바른 생각과 균형을 가진 다수가 소수를 존중하고 살펴보는 시대가 온다면 그곳이 가장 인기 있는, 발전하는 장소일 것이다. 
  
그가 누구이든, 대한민국에 살면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의무를 수용하고 책임을 다하며 서로를지키는 사회가 된다면 좋겠다. 이것이 지역사회의 바람직한 사회통합 방안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정하고 우리가 요구하며 우리가 지키는 것을 말한다. 한류는 K-Drama(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한류는 K-Mind(마음)가 되어야 한다. 한국에 사는 이들의 정신이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동포청이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미래를 바라보며... 그 시점이 지금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