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바나나는 상당히 비싼 과일로 일반인들은 평소에 구경하기도 힘든 먹거리였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겠지만 1970년대 말까지 자장면이 100원선, 시내버스 기본요금이 10원선 일 때 바나나 한 개는 품질과 상태에 따라 500원~1,000원 정도였다.
“엄마 나 100원만!”이라고 외치던 아이들도 특별한 날, 칭찬받을만한 날엔 바나나를 사달라고 철없이 조르던 아이들이 종종 있을 만큼 바나나는 신비롭고 색다른 맛을 가진 최고의 과일 중에 하나였다. 그 시절 가격이 비쌌던 이유는 단 하나! 전량 수입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 중요한 행사에만 조금씩 내었던 바나나. 그래서인지 까만 점(슈가스팟)들이 많은
것들조차 버리지 않고 식용으로 사용하였다. 바나나는 대표적인 후숙과일로서, 익으면서 점점 더 당도가 높아지는데 에너지보충, 면역력강화, 고혈압예방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다.
통계청의 자료에는 지난 1987년을 기준으로 재배면적이 약 678ha에 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고, 이 중 대부분인 650ha가 제주도에 있었다. 기후가 온화한 제주도의 특산품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제주도농업기술원의 자료를 보면 1984년에 13.3ha에서 319톤을 생산하던 것이 1986년엔 167.6ha에서 3,316톤, 1989년엔 443ha에서 2만881톤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고소득 작물로 지위를 굳히던 바나나는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라운드(UR) 체결 여파로 전 농가가 폐원과 작목 전환을 면치 못했다.
이전에는 가장 비쌌던 바나나가 지금은 가장 싼 과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 고유의 맛과 영양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단지 희소성의 문제에 있어서 밀려났기 때문인지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귀한 과일로 여겨지지는 않는 듯하다.
푸른빛을 띤 바나나는 비타민 B,C, 칼륨, 식이섬유 헤미셀룰로즈, 펙틴 등이 상당 수 포함되어 있어서 탄수화물이 적고 저항성 전분이 풍부하여 열량도 적고 흡수가 천천히 되어 당지수(GI)가 낮아 당뇨환자나 비만, 대장암예방에 도움 되는 영양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숙성되어서 슈가팟이라고 일컬어지는 검은점이 많아진 바나나는 미네랄과 비타민이 빠졌어도 당도가 높아지고 다양한 영양소의 변화로 항암효과와 스트레스해소, 피로회복, 뇌혈관질환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결국 먹는 사람의 건강상태와 신선도 상태에 따라 바나나의 섭취는 득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유행에 민감한 공간이다. 이전에는 귀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바나나처럼 시류에 따라 평가되는 것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정치인이 그렇고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도 그런 듯하다.
싱싱하면 싱싱한대로 숙성되면 숙성된 상태로 그 나름의 유익을 끼치는 바나나는 원래부터 그랬다. 세월이 지났다고 영양소가 변하고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바나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을 뿐.
사람도 그렇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누구를 만나 가까이 하고 살아가는가에 따라 그 인생도 달라진다. 세월이 지나면 이전과 다른 대접을 받는 것들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다. 쓸모없다하여 버려진 것들이 가치를 인정받아 상당한 대우를 받는 물건이 있기도 하다. 모퉁이의 버려진 돌처럼 말이다.
언제, 어떤 용도로 섭취하는가에 따라 양날의 검처럼 상반된 효능을 가진 두 얼굴의 바나나처럼 우리 모두는 그렇다.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이익이 되기도 하는 존재.
어릴 때는 미숙함으로 인하여 보이는 순수함과 열정이 있고, 성장하면 성장한 만큼 당당함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기도 하며, 장성하여서는 경험이 가져다 준 지혜로 세상에 유익을 끼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인생. 그것이 바람직스러운 사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바나나 값어치가 떨어진 것은 변질되어서가 아니다. 단지 바나나를 대하는 환경이 달라졌을 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속담에 “될성부른 사람은 떡잎부터 파랗다”라는 말이 있다. 떡잎은 씨앗의 속에 있는 배에서 가장 처음으로 나온 잎을 말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떡잎을 생산한다. 말로, 행동으로, 만남으로...인간이기에 가능한 생산적 활동이다. 떡잎을 잘 가꾸고자 하는 선순환적인 생각과 행동이 사회에 많아지길 바란다.
청년이 된 한중이는 아직도 고민이 많다. 아빠와 엄마가 사이가 썩 좋지 않으니 말이다. 아빠를 따르자니 엄마가 걸리고, 엄마를 따르자니 아빠가 마음에 걸린다. 부모들은 한중이가 잘 자라길 바라고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정작 한중이는 아직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청년의 때인데 청년답지 못하다. 가장이 되었지만 부모의 갈등이 길어질수록 죽어나는 건 한중이와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다. 어찌해야할까?
세옹지마(塞翁之馬)같은 인생사... 나쁨으로 끝나는 처지가 되면 슬프지 않겠는가!
가장 좋을 때를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 안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자산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는 상황들도 있겠지만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고 현재를 발판삼아 미래가 있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닌가. 그렇다고 과거에 얽매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자는 이야기이다.
지금은 평가절하 되어 묻혀진 바나나처럼 한중이를 바르게 돕고 지혜를 말해줄 고고하고 유익한 사람이 필요하다. 어디에 있을까? 대의를 위해 희생하여도 희생이라 여기지 않고 기쁨이라 여기는 그런 사람 말이다.